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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자극들(Environmental Stimuli)

        환경 자극들
 

심리학 전통에서, ‘자극’이 가리키는 것은 지각자의 ‘반응’이 잇따르리라 생각되는 지각물이다. 이들 용어는 반사들(reflex)들에 대한 연구에서 기원한 것들로, 이들 사이 관계는 암묵적으로 원인과 그 결과의 관계로 당연시 되고 있다. 하지만, 인지 심리학과 사이버네틱스에서는 생명 유기체의 더욱 흥미로운 행동들은 모두 반사–패턴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 차이는 피드백–루프 모델로 뚜렷해졌다. 지각물이 유기체의 평형을 통제하는 일정 준거(基準)와 편차를 보이지 않는 한, 지각물은 반응을 촉발하지 않는다.

 

    농부한테는 이를 알기 위한 과학적 모델이 전혀 필요 없다. 말을 우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마시게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항상 잘 알고 있었다. 말이 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갈증이라는 내부 지각이지 외부 지각이 아니다; 그리고 말의 갈증은 그 말만이 직접 접근하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현상이다. 

   

    행동주의 도그마는, 그럼에도, <과학적 설명은 관찰자가 직접 지각 가능한 것들만을 고려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이러한 한정(限定)은 <우리 관점에서 보아, 행동의 이유들을 공급하는> 모든 내부적 준거(基準)에 대한 계획적[programmatic: 프로그램에 입각한 의도적] 무시로 이어진다. 이들 준거는 관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개별 개체의 경우에는 불변(不變)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한가하거나 지겨운 일을 하고 있을 때 울리는 전화기 벨소리는 나로 하여금 전화를 받도록 재촉하는 자극이다; 일에 파묻혀 있을 때라면 멈추길 바라며 한참 동안 내버려둘 것이다.) 

 

    다른 한편, 관찰–가능한–것들에만 전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자극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 기만적 정의가 부여된다. <관찰자가 그 자신의 지각장에서 자극으로 격리해낸 것이 관찰된 유기체한테 자극으로 기능하는 것과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당연시(前提)하는 것은, 실재론의 가장 소박한 형식에 입각한 뻔뻔함(推定)이다. 최소한 야콥 폰 윅스켈과 조지 크리사트(1933)이래로, 동물 심리학자들은 상이한 종(種)들의 지각 세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며,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그 어떤 성인한테도, 수많은 상황들에서, 자신이 주목한 것과 타자가 지각하고 주목한 것이 다른 것들임을 알아차릴 기회들이 있다. 

 

    특정 교과(分野)에서, 아직, 지각, 개념–형성–습관, 그리고 제약들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 또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경우, 그러한 편차는 심각한 장애일 수 있다. 너무나도 자주 교사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이나 관계가 아이들한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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