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조정(accommodation)

1.

 

'동화'를 보라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392

 

 

2.

 

       조정

 

활동(부분 2)은 이어 유기체가 자신의 기대에 동화를 시도할 결과(부분 3)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불가능해질 경우, 유기체한테는 요동이 있을 것이다 (Piaget, 1974a, p.264).  실망이든 경이(驚異)든 그러한 요동은 온갖 이러저러한 대응 행위들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들 가운데 특히 그럴싸한 것이 하나 있다: 초기 상황 1이 아직 복구 가능한 경우, 이제 그 상황은 복합된 촉발 상황이 아닌 일단의 감각 요소들로 검토될 수 있다. 이러한 검토는 동화로 무시됐던 특징들을 드러낼 수도 있다. 만약 그 활동의 결과가 기대와 달라 실망했을 경우, 새로 주목된 특징들 가운데 하나 또는 몇몇이 재인패턴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이어 장차 그 활동을 촉발시킬 조건들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달리, 그 활동의 결과가 즐겁거나 흥미로웠을 경우, 새로운 특징을 담기 위한 새로운 재인패턴이 형성될 수도 있고, 이것은 새로운 스킴으로 간주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일종의 배우기가 있었을 것이기에, 우리는 ‘조정(調整)’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 검토가 활동 성과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에도, 똑같은 가능성들이 전개되며, 이는 다시금 조정을 초래할 것이다. 

 

    삐아제 개념, 스킴은 단순하지가 않다. 동화와 조정이 주관적인 것으로 전제된 <특정 인지하기 에이전트의 관찰 불가능한 상태들>에 의존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스킴 개념은 적절히 이해될 수 없다. 동화는, 비록 관찰자 관점에서 촉발 상황이 이전 경우들과 전혀 같지 않음에도, 그 에이전트를 목표-지향 행위에 개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화(一般化) 효과를 갖는다. 목표가 성취되지 않은 경우, 바로 잇따른 요동은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제약 조건이 초기 알아보기(再認) 과정에 추가 되고, 이는 훗날 특정 ‘비생산적’ 상황의 활동 촉발시키기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결과가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것일 경우, 그 추가 조건은 옛 스킴에서 새로운 스킴 분리하기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그 새로운 조건은 새로운 스킴의 재인패턴에서 중심이 될 것이다.

 

    얽힌 것이 아직 하나 더 있다. 활동 결과, 3의 재인은 에이전트가 이전 경험들에서 얻은 결과들을 알아보기 위해 형성했던 특정 패턴에 다시 의존한다. 말인즉, 여기서도 동화가 수반된다.

 

    이러한 분석에도, 많은 교과서들에서 그러는 것처럼, 조정은 단지 동화의 역(逆)일 뿐이라 말한다면, 오도(誤導)하는 짓이다. 스킴 이론에 대한 내 해석에서, 조정은 스킴이 오로지 기대된 결과를 낳지 않는 경우에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정을 야기하는 결정적인 것은, 관찰자가 감각 ‘입력’이라 칭한 것들이기 보다는, 대체로 인지하기 에이전트의 관찰 불가능한 기대들이다.

 

    이러한 조정 맥락에서 드는 의문: 아이의 스킴들은 어떤 상황에서 아이의 배우기를 압박할 당황스런 결과들을 만들어내는가? 감각운동 수준에서, 아이가 구성한 영속 대상들, 그리고 그것들과 빈번한 상호작용은, ‘<몸을 포함한> 물리적’ 세계를 발달시키는 행위패턴 네트워크를 확장, 정교화 하는 무수한 기회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나 아이의 경험 세계는 여타 사람들 또한 담아내기에 이르고, 그들과 아주 꾸준한 상호작용은 더욱 풍부한 요동의, 그리고 잇따르는 조정들의 원천이다. 삐아제는, 조정을 가장 빈번하게 야기하는 원인은 타자들과 상호작용, 특히, 타자들과 언어적 상호작용임을 수없이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성분(部門)을 고려치 않았다는 비판을 자주 받고 있다. 그러한 비평가들이 평소 내세우는 주장은, <어른이나 교사들은 아이나 학생들한테 그들과 상호작용을 거쳐 지식을 전송(傳送)하고 있으며, 그 지식의 일정 형식들은 사회에 고유한 것이 되어 그 집단에서 개체로 직접 전이(轉移)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서 개인으로 그와 같은 전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여하한 메커니즘도 이제껏 설명된 바가 전혀 없다. (언어가 이러한 활약을 수행할 수 없음은, 앞장 소쉬르 분석에서 제시되었고, 7장에서 훨씬 더 상세히 설명될 것이다.)

 

3.

 

'평형화 개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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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우기'를 보라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398

 

5.

 

    유아의 감각운동 시기(즉, 아이의 첫 두 해) 초반, 동화와 조정은 알아차림과 의식적 반성 없이도 벌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너 달 먹은 젖먹이들이 (관찰자들한테는, 모두 똑같지 않은) 아이템(項)들을 특정 스킴의 촉발자들로 동화시킨다는 사실은 때때로 일반화 능력으로 기술되고 있다 (동물 심리학자들은, 쥐 혹은 원숭이들과 같이 작업한 후, 이 능력을 ‘자극 일반화’라고 부른다). 감각운동기 조금 나중에서야, 반성은 작동하기 시작해, 주어진 특정 스킴에서 기능하는 경험 아이템들을 기능하지 않는 여타 것들과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와 같이, 일종의 메커니즘이 개시되는 바, 그것은 실험관찰적 추상들의 원천을 갖추고 있으며, 생겨난 실험관찰적 추상들은, 경험된 아이템들이 실제 제시되지 않고 있을 때, 아이가 자신한테 그것들을 재연(再演)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불가피하게, <행하기 주체의 알아차림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수반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5.

 

'도구적 배우기'를 보라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393

 

 

4.

 

    스킴이 기대된 또는 바라던 결과를 내오고 있는 한, 조정(調節)은 통상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變化) 발생 조건은, 스킴이 실패할 때 또는 다른 성공적 스킴과 모순이 표면화될 때다. 그럼에도, 탁월한 물리학자들한테조차 실상이 아닌 것은, 확립된 이론의 단 한번의 실패로 그들이 그 이론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쿤(1962)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어진 패러다임 속 ‘정상 과학’은 그 패러다임을 의문시하는 예외(變則)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아주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된다. 고로, 수업 중 한 번의 증명으로 학생들이 그들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것으로 찾아냈던 ‘오개념(誤槪念)’을 포기하기에 이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순진(素朴)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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