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심리학(psychology)

심리학 입문에서,

 

그 학과의 두 명, 이들은 대다수 행동주의자였던 동료들과는 달랐으며, 언어에 관한 내 생각에 상당한 공감을 갖고 그들 교과 과정에 나를 참관시킴으로써 나를 성심성의껏 도왔다. 한 명은 밥 폴락으로, 그는 그때(1969) 알프레드 비네의 연구 논문들을 편집해서, ‘비네의 지능 지수’가 비네를 대단한 심리학자라고 믿도록 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심리학자로 보여주는 한 권의 책을 막 끝냈다; 다른 한 명은 챨스 스먹으로, 그는 제네바에서 상당 기간 훈련을 받은 발달심리학 전문가였다. 

 

내가 폴락의 교과 과정을 따라잡으며 지각에 관한 것을 많이 읽었던 것은, 그것이 그의 전문 분야였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심리학 최신 모델들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행동주의

행동주의를 보라.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733

 

 

경험론

케카토와 삐아제를 딛고 시작했던 구성론적 생각하기 방식은, 뭔가 할 말은 있었다고 느꼈지만, 분과들의 확립된 도그마를 잠식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삐아제가 진지하게 자신을 철학자로 승인토록 하는 데 성공치 못했다면, 이 무명의 아웃사이더는 분명코 다다를 데가 없었을 것이다. 언어학에서, 노엄 촘스키의 작업은 행동주의의 판세를 멋지게 뒤집었다. 그렇지만, 그러는 사이 그는 언어의 기본 요소를 타고난 걸로 단정(斷定)해버렸고, 이러한 전제(當然視)는 구성론으로 접근하는 문을 닫아버렸다. 심리학은 여전히 마음을 괄호로 묶어 제치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행동 과학’으로 선포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그런 류의 교과서에서 받은 경고란 철학하기는 무익하다는 것이었다. (통상 실재론으로 이해되었던) 경험론(實驗觀察論)이 패스워드였다;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건 단 하나, 구성론적 접근의 유용함을 보여줄 실험 데이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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