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사회적 상호작용의 비밀(The Secret of Social Interaction)

        ‘사회적’ 상호작용의 비밀
 

우리가 보는 타자들이 행한 것과 우리가 듣는 타자들이 말한 것은, 필히, 우리 자신이 행하고 말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것은 우리 생각하기가 반영된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타자들은 우리가 구성한 타자들이라는 생각(觀念)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그 결과로, 그들이 그들에 대한 우리 모델과 양립-불가능성을 입증할 때마다, 그 모델을 세우며 사용했던 관념들에 동요가 발생한다. 이들 관념은 우리의 관념이며, 그것들이 제약들로 인해 요동칠 때 우리는 조정으로 내몰릴 수 있다. 사회 지향성을 갖는 구성론자들은 ‘의미와 지식의 협상’에 대해 말한다. 이것이 그 절차에 대한 적합한 기술(記述)인 까닭은, 통상, 일련의 작은 상호 조정들을 거치며 약간의 양립-가능성을 확립하기 때문이다.  

 

    학생들한테 주입되어야 하는 고정된 지식체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하는 교사들이, 그들 활동을 협상의 한 형식으로 볼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효과적 가르치기 이력을 갖고, 그 효과를 만들어낸 것을 검토하기 시작한 교사들은, 분명, 주어진 지식 조각에 개별 학습자가 접근하는 그 순간 그것을 달리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다. 

 

    RC에서, ‘협상하기’ 절차의 결정적 측면은, <협상 당사자들의 지식이 그 과정에서 서로 얼마만큼 양립할 수 있었는가>와는 무관하게, 그 결과들 – 그렇게 조정된 지식 – 은, 변함없이 주관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몇 년 전 하인리히 바우어스펠트가 지식 발생에서 협상의 역할을 설명할 때 제시했던 것보다도 더 간단하고 더 명쾌한 구성주의의 기본적 시각에 대한 정식화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전적으로, 지식의 주관적 구조들은, 고로, 바이어블한 모델로 기능하는 주관적 구성물들이며, 그것들은 ‘세상(世上)’의 저항에 적응하는 과정들을 통해,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협상들을 거치며 형성된 것들이다. (Bauersfeld, 1988, p.39)   
 

    이 책 전체에 걸쳐 해명하며 고수(固守)하려 했던 합리적 조망에서 보자면, <행위-스킴들과 개념–구조들을 건축하는 주체가 물리적–장애라는 형식으로 만나는 제약들> 그리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저항> 사이에 기능적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들을 사회적 구성주의라 칭하는 운동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와 사회적 상호작용은, 지식 공유하기를 위한 더 직접적 수단들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Gergen and Gergen, 1991, p.78). 나는, 구성론자로서, 그들이 틀렸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겠지만, 그들한테 내가 요구하는 것은, <언어에서 그와 같은 의미 공유하기와 지식의 집산적 발생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럴듯한 모델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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