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사물과 단위들(Things and Units)

        사물들과 단위들
 
그렇다면, 수란 무엇인가? 아마도 결국 유클리드의 해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쑤시게의 사례에서 분명해진 바, 수는 다루고 있는 개별 대상들의 특징이 아니다. 필시 수란 그것들의 더미들로 배열하기, 즉, 그것들의 군짓기(群集化)일 수 있다. 그러나 이도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그것은 그저 한 발 더 나가, 우리의 군(group)-개념[P.104를 보라] 형성-방식에 대한 문제만을 제기할 뿐이다. 게다가 설사 4개의 이쑤시게가 방 모퉁이에 하나씩 놓여도 변함없이 넷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그때, 그 필요한 전부(總)는 어디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된 것이지만, 빈번히 무시되었다. 내가 찾아낸 답의 가장 오래된 진술은 또한 가장 우아한(洗練된) 것이자 설득력에 있어서도 최고다. 그것은, 내가 앞서(5장) 인용했던 17세기 비제바노 주교, 후앙 카라무엘의 것이다. 그는 전에 없이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전했다:
 
잠자며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시계가 네 시를 치자, 말했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저 시계가 미쳤군, 일격에 네 번을 치다니.’ 분명히 그는 땡 하나를 네 번 셌지, 땡 넷을 세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에 있었던 것은 넷이 아닌 네 번을 취한 하나(單一性)였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 여러 사물들을 세는 일과 그것들을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看做)하는 일은 상이한 활동이다. 만약 내 서재에 네 개의 시계가 있고 네 개 모두 같은 시점에 한 번 친 경우, 그것들은 넷을 친 것이 아니라 하나를 네 번 쳤다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심적 조작들과 독립된) 사물들에 고유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러한 차이는 세고 있는 그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로, 지성(心)은 수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든다; 지성(心)은 상이한 사물들을 각각 그 자체로 구별된 것들로 간주하여, 의도적으로 그것들을 통일(單一化)시킨다. (Caramuel, 1670, pp.xliii–xliv)
 

    카라무엘한테, 그것(數-構成)은 ‘의도적으로 [상이한 사물들]을 생각으로 통일시키는 일’이었다. 그 후 30년쯤 지나, 버클리가 자신한테 남긴 메모 하나: ‘수가 마음 없이는 그 무엇에도 없다는 것은, 사물들이라는 복합 관념들을 만드는 것은 바로 사물들을 하나로 간주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1706–8, par 106). 그럼에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남아 있다: <‘사물들’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또는, 보다 정확히 <마음이, 사물들을 단일화시켜 복합 관념들을 형성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들을 구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맥렐란과 듀이는 그 필수(必要) 조작들을 명시할 모든 생각(計劃)을 갖고 있었다.
 
단순한 알아보기(再認), 예를 들어, 세 사물들을 셋으로 알아보기에 수반되는 지적 조작들은 다음과 같다: 세 대상들이 전체나 그룹(群)과 연결된 하나로 형성되고 있음을 알아보는 것 – 말인즉, 세 사물들을 반드시 개체(個體)들로 알아보아야 하며, 동시에, 세 사물들로 형성된 하나, 단일성, 전체(全部)를 알아보아야만 한다. (McLellan and Dewey, 1908; p.24)
 

    그들은 여기서 단어 ‘알아보기(再認)’을 사용했다 – <하나이거나 셋인 것은 사물들에 속하는 일종의 지각 가능한 속성이다>를 함의하는 것으로 썼다 – 하지만, 그 구절 조금 앞에서 그들이 지적했던 것은, ‘수는 합리적 과정이지 감지[sense: P.33을 보라] 사실이 아니다’(ibid., p.23)였다; 그리고 그 구절 조금 뒤에 그들이 설명한 것은, ‘수는, 감지 지각의 소재를 정돈하고, 정의하는, 그리고 관계-짓는 합리적 과정들에서 생겨난다’ (loc. cit., p.35)였다. 이와 같이, 수 구성에는 구별된 사물들을 취해 특정 조작들을 써서 그것들을 통일시키는 능동적 마음이 필요하다. 수 개념에 대한 조작적 모델을 우리가 갖고자 할 경우, 분석이 요청되는 것은 바로 <정의하기와 관계-짓기>라는 이러한 조작들이다.

 

    분명, 분리하기와 통일시키기는 결정적 활동들이다. 개별적(離散的) 단일 아이템들을 창조하는 조작과, 그와 같은 여러 개별 아이템들을 취해 그것들을 통일시켜 그것들을 재차 하나의 단위로 보이게끔 하는 조작은, 틀림없이 있는 것들이다. 고로,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단위, 단일 아이템을 어떻게 갖게 되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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