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방향-잡는 기능(Orienting Function)

        방향–잡는 기능
 

이 용어는 움베르토 마투라나(1970a)가 언어 일반의 기능을 가리키고자 만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르치기 맥락(狀況)에서 나한테 의미하는 바를 다소 거친 은유(隱喩)로 조명하고 싶다. 오해가 없도록 말하건데, 은유로 조명하려는 것은 상황의 동적 양상이지 관여된 주체들의 특성이 아니다 . 

 

    한 농부가 여기저기 구멍 난 울타리를 따라 이어지는 작은 시골 길에서 적은 소떼를 자주 몰아야 할 때, 실제 그 일은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이 동물들을 계속 몰려면 그들 뒤에 있어야 하지만, 선두 소가 울타리에 난 구멍을 탐지하면 필히 들판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 다른 놈들도 따라 쫓아가면, 농부는 그들을 그 틈새로 되몰기 위해 들판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는 힘든 일이긴 하지만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길 쪽으로 되돌렸던 소들이 항상 그렇듯 오던 길로 방향을 되트는 것이다.**  이것은 승산 없는 시나리오며, 최소 한 마리 충견도 없이 그와 같은 이동을 해낼 농부는 없을 것이다. 이로써 모든 차이가 만들어진다. 농부는 울타리 틈새를 앞서 탐지해서, 그럴 때마다 그 틈새를 막기 위해 개를 보낸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 개는 소떼를 몬 것이 아니라 단지 소떼 이동에 있어 추가된 제약(制約)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임에 주목하라. 그들 이동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농부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그 개의 역할은 수업 중 사용되는 언어의 주요한 기능과 비슷하다.
 
** 나는 이를 신참 농부로 아일랜드에서 경험했지만, 나는 이 시나리오가 영국 여러 곳들, 그리고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그 어떤 시골길에서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구성할 개념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말해줄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상 시도 가능하지만 헛된 것으로 간주한 방향에서 신중한 언어 사용으로 학생들의 구성하기를 막을 수는 있다. 농부의 경우에서처럼, 지속적 동기 유발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교사며, 비록 그의 언어가 학생들의 개념적 구성하기를 결정지을 수는 없어도, 그들을 특정 방향으로 향하도록 제약들을 배치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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