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모양(shape)

표현 ‘언어 게임’은 핵심 슬로건이 되었다. 이 슬로건은, 비트겐쉬타인의 주장(斷言), “단어의 의미란 그 단어가 쓰이는 방식이다”와 함께, 수많은 이들한테, 언어를 특정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공유/공용하게 된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오도(誤導)했다.         

    내 조망에서,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해석이 고려치 못한 것은, 비트겐쉬타인이 이들 두 가지 요점을 프레게 준거(準據) 이론과 <30여 년 전 자신이 Tractatus에서 썼던 것들> 상당수에 대한 반론의 일환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의 후기 저작 1부에서, 그의 주요 관심사는, 단어들은 관찰자와 독립된 대상들을 지시한다는 생각(觀念)을 깨부수는 것이었으며, 그 일을 그는, <‘의자’ 말하기와 의자 ‘모양’ 말하기 사이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훌륭히 해냈다(ibid., par.35). 비트겐쉬타인 왈, 의자는 가리켜질 수 있으나, 모양은 그럴 수 없다. 

 

    실상, 어떤 언어에든, 지각 가능한 지시된 대상들을 그저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의미를 갖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다. 모양이 좋은 사례인 까닭은, 누구든 이것을 색깔을 보는 방식으로 볼 수도, 뜨겁거나 찬 걸 느끼는 방식으로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어 ‘모양’의 의미는, 고로, 감지들이 집어낼 수 있는 독립된 어떤 것이 아니다. 이 사례로, 비트겐쉬타인은 논리주의자들의 준거(準據) 이론을 아주 성공적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단어 ‘모양’을 위한 의미가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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