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마지막 강조점(A Final Point)

        마지막 강조점

 

수학과 과학들에서 가르쳐야 하는 많은 것들은, 학생들의 일상생활, 그리고 흥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들이다. 배우려는 동기는 다양한 원천들에서 생겨날 수 있지만, 교사가 시작할 때 좀체 바로 솟아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가볍게 두드려야 한다. 교과 내용과 학생들의 경험장(經驗場) 사이 그럴듯한 고리를 창조하는 것은, 훌륭한 방식이지만,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교사한테 훨씬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또 다른 태도는, 화제(話題)와 그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진솔한 열정을 보이는 것이다. 학생들은 척하는 열정을 간파하는 예리한 안목을 갖고 있으며, 교사의 권위가 모든 해답 알기에 있다고 느끼는 교사들이 그들 학생들의 진짜 호기심을 일깨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 시각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답을 알지 못한 문제를 놓고 함께 작업할 기회가 오면 언제든 환영해야 한다. 그와 같은 기회에, 훨씬 깊고 넓은 권위가 얻어질 수 있는 방식은, 그 문제를 푸는 더 나은 방식을 압박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제안들 가운데 상당수가 왜 부적절하며 성공할 것 같지 않은지 보이고자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논증들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다.   

 

    나는 (이 책에서 말했던 많은 것들과 다르지 않은) 이것을 고등학교 경험에서 얻었다. 우리가 수 이론에 다다랐을 때, 우리 선생은 진짜 수학자였다. 왜 어떤 증명들은 우아하고 그밖에 것들은 맞지만 장황한지, 그가 우리한테 보여주려 했던 그 열정은, 우리로 하여금 그 구별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만들었다. 어느 날,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작업으로 여가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건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데’, 하고 말하길, ‘누가 알아 - 너희들 가운데 누가 이 증명을 찾아낼 수 있을지’. 우리는 스키 타는 것도 제쳐두고 그것에만 매달려 주말을 보냈다. 그 다음 수업 시간 내내 그는 우리 시도들을 찬찬히 살피고 나서,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도들은 왜 가망 없는 방향들로 빠져들었는지 부드럽게 제안했다. 이러한 경험에서, 우리는 커리큘럼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배우기에 관한 어떤 것을 배웠다.

 

    요컨대, RC는 교육자들한테 주장할 수 있다: 가르치기 예술은 지식의 거래(去來)와는 손톱만큼도 관계가 없다; 그것의 근본 목적(存在理由)은 배우기 예술을 육성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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