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동화(assimilation)

1.

 

 

 

 

        동화

 

 

 

 

 

동화와 조정 양자는 삐아제 이론의 핵심 용어들이지만 또한 가장 잘못 이해된 것들이기도 한다. 동화는, 자주, ‘환경 요소들을 변화시켜 유기체 구조로 편입(編入)시키는 과정’ (Nash, 1970)으로 기술된다. 이것에는 ‘동화 기능은 소재(物質)을 환경에서 유기체로 가져오는 일’이 함의되어 있기에, 기만적이다. 그 대신, 동화는, 내 해석에서, 새로운 소재를 알려진 것의 일례(一例)로 처리하는 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삐아제 그 자신의 정의는 그의 저작들의 많은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그 가운데 하나다: 

 

 

 

 

 

... 그 어떤 행동도, 설사 개체한테 새로운 것일지라도, 오롯한 출발이 될 수는 없다. 언제나 그것은 이전 스킴들에 접목되어, 새로운 요소들을 (반사들처럼 타고난, 또는 이전 획득된) 앞서 구성된 구조들에 동화시킨다. (Piaget, 1976a, p.17) 

 

 

 

 

 

    인지적 동화는, 인지하기 유기체가 경험을 이미 갖고 있는 개념적 구조에 들여 맞출 때 일어난다. 동화에 대한 실제 기계적 사례는, 이미 한물갔지만 천공 카드를 처리하는 카드-분류기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다. 한 뭉치의 카드를, 이를테면, 특정 구멍 세 개가 뚫린 원본-카드와 비교할 목적으로 이 기계에 넣을 경우, 이 기계는 카드들에 뚫려 있을 그밖에 구멍들에는 개의치 않고 원본–카드와 같은 구멍들을 지닌 카드라면 모두 골라낼 것이다. 이 기계는 그밖에 다른 구멍들을 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이 골라 뽑은 모든 카드들을 원본–카드와 동등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지만, 다른 구멍들을 보는 관찰자는, 이 기계가 이 모든 카드들을 원본–카드에 동화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계는 자신이 검토하는 카드들에 있는 다른 구멍들을 능동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각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삐아제는 단어 ‘동화’를 생물학에서 빌려왔다. 사과를 먹는 사람을 보고 할 수 있는 말: “그의 몸은 그 사과를 동화하고 있군”. 이 말은, 그 사과가 어떻게든 변형되어 유기체의 구조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과의 단지 일정한 화학적 성분들만 그 유기체가 유용한 것들로 알아본 다음 추출하고, 그밖에 다른 것들은 무시되어 내버려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모델에서 동화는 환경의 요소들, 즉, 영양분이나 다른 화학 물질들을 흡수한다. 이 용어를 채택한 삐아제 인지이론에서, 이 용어가 이상의 의미일 수 없는 까닭은, 그 조작적 과정이란 물리적 전달이 아닌 <지각 그리고/또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한 다음, 우리가 얻는 그림은 ‘정보나 데이터는 감지들을 거쳐 지각하기 유기체한테 전해진다’는 전통적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 삐아제 정의를 써서 말한다면, 인지적 유기체는 오로지 자신이 이미 지닌 구조에 맞아들 수 있는 것만을 지각(동화)할 뿐이다. 물론, 이는 관찰자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유기체가 동화할 때 자신이 지닌 개념 구조에 맞아들지 않는 것들은 모두 알아차리지 못한 채 또는 무시된 채 남는다>는 점은, 사실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기체가 평생 겪는 여하한 상황도 또 다른 상황과 정확히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많은 경우, 차이들이 무시되는 것은 분명 이득이 된다 (따라서, 적응적이다). 다시 관찰자 관점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특이성(特異性)은 이러한 적응은 통상적 적응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지각 과정에서 지각되고 있는 것들은 유기체의 개념 구조에 맞아들기 위해 수정되지만, 반면, 일반 생물학적 의미에서 자연선택은 유기체들의 구조를 수정함으로써 그것들이 그들 환경의 고유한 제약들에 맞아들도록 한다. 이러한 적응 과정의 명백한 역전(逆轉)은, 독립된 실재에 자체로 실존하는 대상들을 지각하는 유기체 견지에서 생각하는 한,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구성론자 관점에서, 적응은 사물-자체들로 조성된 외부 세상과 맞서 대등해지는 걸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평형을 개선하는 것, 즉, 경험된 제약들과 관련해서 자신을 들여 맞추는 일을 뜻한다. 이는 구성론 모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며, 우리는 이 점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요약하면, 동화는 항상 새로운 경험을 이미 실존하는 <감각운동 또는 개념> 구조로 환원시키며, 이로써 불가피한 의문이 제기된다: 도데체, 배우기는 왜 일어나며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와 관련해서도 역시 삐아제가 널리 오해되었된 까닭은, 많은 해석가들이 <제네바 학파는 용어 동화와 조정을 삐아제가 ‘스킴들’**이라 칭한 특정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 프랑스 단어, 쉐므(schème)는 행위나 조작들로 조성된 스킴(scheme)을 지시한다. 불행히도, 이 단어는 자주 프랑스 단어, 쉐마(schèma)에 상응하는 ‘스키마(schema)’(복수는 ‘스키마타(schemata)’)로 번역되었다 ; schèma(도식 또는 도표)는 도시계획이나 공정도와 같은 정적 그래픽이나 다이어그램을 지시하기에 삐아제 텍스트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번역가들은 영어권 독자들한테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시켰다.

 

 

2.

 

부분 1에서 ‘재인’은 언제나 동화의 결과이다. 어떤 경험적 상황이든 과거에 그것을 특징지웠던 조건들을 만족시킬 경우, 그 상황은 어떤 스킴의 출발점으로 인정된다. 관찰자의 관점에서, 그 상황은 <촉발자로 기능했던 과거 상황들>과 관계해서 온갖 종류의 차이들을 드러낼 수 있지만, 동화하는 유기체(이를테면, 아이)는 이들 차이들을 잡아내지 못한다. 그 경험적 상황이 일정 조건들만 만족시키고 있다면, 그 상황은 연합된 활동을 촉발시킨다.

 

3.

 

'조정(accommodation)'을 보라

 

4.

 

 

 

 

    유아의 감각운동 시기(즉, 아이의 첫 두 해) 초반, 동화와 조정은 알아차림과 의식적 반성 없이도 벌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너 달 먹은 젖먹이들이 (관찰자들한테는, 모두 똑같지 않은) 아이템(項)들을 특정 스킴의 촉발자들로 동화시킨다는 사실은 때때로 일반화 능력으로 기술되고 있다 (동물 심리학자들은, 쥐 혹은 원숭이들과 같이 작업한 후, 이 능력을 ‘자극 일반화’라고 부른다). 감각운동기 조금 나중에서야, 반성은 작동하기 시작해, 주어진 특정 스킴에서 기능하는 경험 아이템들을 기능하지 않는 여타 것들과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와 같이, 일종의 메커니즘이 개시되는 바, 그것은 실험관찰적 추상들의 원천을 갖추고 있으며, 생겨난 실험관찰적 추상들은, 경험된 아이템들이 실제 제시되지 않고 있을 때, 아이가 자신한테 그것들을 재연(再演)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불가피하게, <행하기 주체의 알아차림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수반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5.

 

'도구적 배우기'를 보라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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