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도구적 배우기(instrumental learning)

1.

 

        도구적 배우기의 귀납적 기초  

http://www.cysys.pe.kr/zbxe/RRC/324573

 

 

2.

 

구성주의(構成論)는 알기 이론이며 전통적 인식론과는 연(緣)을 끊었기 때문에, 그것의 교육적 적용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분류가 필요하다. 이는 근본적 문제를 끌어올린다. 교육은, 결국, ‘정치적’ 기획이다. 교육의 목적은, 내 알기로,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학생들은 스스로 그리고 모순 없이 생각할 권능을 부여받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최선이라 판단된 행하기와 생각하기 방식들은 다음 세대에도 영속되어야 한다. 

 

    구성주의는, 여하한 곤란 없이 이들 전제들을 승인하지만, 지식에 대한 통상적(通常的) 정당화는 용납하지 않는다. 전통적 시각에서, 학교는 가치–중립적, 객관적 지식을 학생들한테 전해야 하는 제도로 생각한다. 구성론자들이 그와 같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든 지식을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고로, 가장 먼저, 학생들은 행하기와 생각하기의 특정 방식들이 바람직하다고[즉, 사용–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 이유(理由)들을 들어야만 한다. 이어, 그 획득된 지식이 작동하리라 믿어지는 그 특정 맥락(狀況)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와 같은 설명은 ‘진리를 위한 진리’를 믿는 이들한테는 엄청난 충격이다.

 

    구성론적 방향에 각별하게 혐오감을 갖는 이들은, 교과서와 TV에서 그리고 ‘획기적–이론과–도구들에–대한–발명들(breakthroughs)’에 대한 통속적 설명들에서 유포된 과학적 신화(神話)들로 과학에 대한 생각(構想)을 다듬었던 수학과 물리학 교사(그리고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과학이 실재하는 세상이란 무엇과 같은지 그들한테 말해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주장 포기에 따른 자신들의 권위 상실을 두려워한다 (Désautels and Laro– chelle, 1989를 보라).  

    

    그럼에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학생들이 배울 걸 알게 되면 유익할 것이라는 근거를 볼 수만 있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학습에 더욱 적극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단의 지식의 도구적 가치를 결정짓는 대다수 목표들이란, 학생들이 공유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애매한 것들이 아니다. 그 목표들이란, 일상생활의 지루한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부터 개체의 경험적-실재(現實)의 추상적 수준에 심적 평화를 생성하는 것까지를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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