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객관성(objectivity)

1. 

 

객관성에 대한 의문(구성론적 객관성 = 상호주관성)

http://www.cysys.pe.kr/zbxe/RRC/board_9/324438

 

 

 

2. 

 

자기-지시(self–reference)의 인식론적 함의들은, 과학철학에 대해 사이버네틱스로 접근하는 경우 한층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전통 과학의 도그마에 속하는 신조 하나와 충돌한다: ‘과학적 기술(記術)과 설명들은, 그 어떤 관찰자와도 무관한, 자체로 실존하는 객관적 실재의 구조를 추정해야 하며, 실상, 그럴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는, 그 토대에, 자기–규제(調節), 자율, 그리고 인지적 유기체의 정보 폐쇄성이라는 아이디어(觀念)들을 깔고 있기에, 대안적 조망을 북돋는다. 이러한 조망에서, 현실(reality)이란, 관찰자와 관찰된–것이 한 쌍으로 상호의존하기에, 쌍방향적으로 구상된 것이다. 하인츠 폰 푀르스터의 말대로, 전통적 의미에서 객관성은, 생리적 맹점에 상응하는, 인지적 맹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있지-않는(모르는) 것은 보고-있지-않다(모른다). 객관성은 특정 주체 없이 관찰하기가 행해질 수 있다는 그 주체의 망상이다. 객관성 갈구하기/끌어대기는 책임감 폐기하기다 – 고로 인기가 있다. 

 

3. 

 

 

 

 

구성주의는, 여하한 곤란 없이 이들 전제들을 승인하지만, 지식에 대한 통상적(通常的) 정당화는 용납하지 않는다. 전통적 시각에서, 학교는 가치–중립적, 객관적 지식을 학생들한테 전해야 하는 제도로 생각한다. 구성론자들이 그와 같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든 지식을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고로, 가장 먼저, 학생들은 행하기와 생각하기의 특정 방식들이 바람직하다고[즉, 사용–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 이유(理由)들을 들어야만 한다. 이어, 그 획득된 지식이 작동하리라 믿어지는 그 특정 맥락(狀況)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와 같은 설명은 ‘진리를 위한 진리’를 믿는 이들한테는 엄청난 충격이다. 

 

 

 

구성론적 방향에 각별하게 혐오감을 갖는 이들은, 교과서와 TV에서 그리고 ‘획기적–이론과–도구들에–대한–발명들(breakthroughs)’에 대한 통속적 설명들에서 유포된 과학적 신화(神話)들로 과학에 대한 생각(構想)을 다듬었던 수학과 물리학 교사(그리고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과학이 실재하는 세상이란 무엇과 같은지 그들한테 말해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주장 포기에 따른 자신들의 권위 상실을 두려워한다 (Désautels and Laro– chelle, 1989를 보라). 

 

 

 

 

데이타

 

대다수 과학자들과 보통 사람들은, 100년 전만 해도, ‘데이터’라 그들이 불렀던 것들은 근접해서 보았던 이가 거기서 발견한 것들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은 뒤흔들렸다. 오늘날,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은, <데이터 발견하기에는 조사와 관찰을 감독, 지시하는 특정 이론-구조가 전제(先假定)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한슨(1958, p.19)은 아주 간략히 적었다: ‘X에 대한 관찰은 X에 대한 선행 지식으로 다듬어진다’ (또한 Bridgeman, 1961; Kuhn, 1962; Feyerabend, 1975를 보라). 이러한 견해는 ‘모든 데이터에는 이론이 실려 있다(All data is theory-laden)’는 구절로 표명되었다.

 

그럼에도, <우수한 데이터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고로, 그것들은 관찰자의 지각 습관, 이론, 그리고 신념들과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널리 유포된 신념은 여전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데체 데이터는 어떻게 환경에 대한 참된 재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로 쓰일 수 있단 말인가? 이 텍스트를 통틀어, 나는 이러한 신념이 인식론에 역설을 야기시키고, 고로, 만족스럽지 못한 인지 모델로 이어지기에, 쓸모없는 것임을 논증했다. 구성론적 조망은, 모든 지식은 주관적 경험에서 구성된다고 단정(設定)함으로써, 더욱 유망한 접근을 제공한다. 이러한 단정은, 경험적 사실, <수학은 여하한 개별 주체도 의심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의미로서 탁월하게 ‘객관적인’ 수많은 결과들을 산출하고 있다>는 점과 상당히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분명, 이것은 구성론적 모델이 바이어블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RC(1995)의 개념적 네트워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