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개체 동일성 발생시키기(Generating Individual identity)

         개체 동일성 발생시키기 

 

그래픽 맵핑 방법은, 내가 앞서 말로 기술한 ‘대상 영속’ 개념을 더 선명하게 할 것이다. 삐아제의 La Construction du Réel chez l’enfant에는 대상, 공간, 인과성, 그리고 시간 구성에 관한 장(章)들이 담겨 있으며, 삐아제는 이들 개념 발달이 아이 마음에서 동시에 같은 기초 자재를 쓰며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나는 설명했다. 적어도 이러한 원자재 몇몇은 격리해서 도식으로 재현할 수 있다. 

 

    ‘대상 영속’의 핵심은 개체 동일성의 형성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경험 둘이 <그 대상은 변함없이 하나이자 똑같은 것이었다>는 관념으로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그 관념의 획득 시기는, 필시, 아주 초기 경험, 즉, 유아 주의가 그의 시각장의 움직이는 대상에 잡혀 머무를 때다. 그 대상은 방 안을 가로지르는 사람일 수도, 누군가 흔드는 장난감 인형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 아이는 그것에 집중한 채 자신의 머리를 움직이거나 최소한 눈이라도 돌려서 쫓아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시각 추적’이라 불러왔다. 그 대상이 계속 시야에 있을 때, 그것이 변함없이 하나이자 똑같다는 것은, 전적으로 계속해서 보이고 있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편, 실험들은, 그 대상이 규칙적 템포로 움직여 아이의 시야를 가리는 장막 뒤로 사라지더라도, <아이>는 추적 운동을 계속할 것이며, 주시 방향은 그 대상이 다시 나타날 장막 다른 쪽 끝이 될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Bower, 1974, p.195ff). 따라서, 대상이 사라지기 전후 그 대상 경험들 사이 연결은 <관찰자> 자신의 운동으로 공급된 것이다. 훨씬 이후, 개념들이 경험에서 추상될 때, 이러한 추적 운동의 연속성은, 추적 대상이 시야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그 사이 간격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의 개체 동일성을 보존하기 위한 강력한 근거가 된다. 물론, 개체 특징들로 간주되는 색, 모양, 표식과 같은 또 다른 기준들도 있다. 인간 개체들의 경우, 출생 반점, 상처, 치아 충전물, 그리고 지문, 등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동일성 지시들은 자체로는 표피적 기준이며, 인물(他者)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 우리한테는 모든 걸 능가하며 그 자체로 결정적으로 간주되는 훨씬 더 심층적 기준이 있다. 

 

    당신보다 두세 살 더 먹은 형이 당신이 아직 10대일 적에 가족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갔다고 하자. 당신이 아는 그 어떤 이도 그 후 그를 보거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당신이 중년이 되자, 한 남자가 찾아와 당신 형이라 우긴다. 그는 당신의 기억된 이미지와 안 들어맞는다. 그는 대머리에, 안경을 썼으며, 전혀 낯선 투로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외모는 완전히 낯선 이다. 그는 사기꾼인가? 그러나 이윽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존의 차고 유리창을 부수고 아랫동네 아일랜드 애들한테 뒤집어 씌웠던 거 기억나지?’ – 필시 그것은 눌려 있었겠지만, 이제 그 부끄러운 짓은 떠오른다. 그 사건을 당신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고, 당신 형이 그것을 다른 이한테 뽐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여기기에, 그 기억으로 즉시 당신은 이 방문객을 당신 형으로 확신한다. 

 

    기억은 개체 동일성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표지로 보이다. 우리는 기억을 개체를 특징짓는 가장 사적인 소유물로, 특히 난처한 것이라면, 유일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텔레퍼시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에 격심한 주저감을 갖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着想)이 들었다. 왜냐면, 개체 동일성의 가장 신뢰할 만한 기준은 우리 생각(思想)들의 절대적 프라이버시에 따른 것이기에, 우리 생각(思惟)들에 타자들이 닥치는 대로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기준은 의심스런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개체 동일성 개념은 도식으로 사상될 수 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주의 프레임들이 연접하는 동안 주체의 지각 장에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설정된 경험 대상의 동일성이다. 그것은 다음 배열로 형성된다. 

 

개체 동일성 발생.jpg

 

     t1에, 아이는 자신의 지각 장에서 아이템 하나를 격리해낸다; 시간들 t2 . . . tn에, 그 아이템은 더 이상 지각되지 않고 아이의 주의는 다른 데에 집중된다; 시간 tn+1에, 아이는 다시 자신의 지각 장에 있는 아이템 X2를 격리하고, 이어 이 두 번째 아이템을 시간 t1에 있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두 아이템이 완전히 같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저 동등한 것으로만 간주될 경우, 그 배열 구조는 분류 모델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라. 두 개념 구성물 사이 차이는, 두 경험을 고리 짓는 같음의 종류에 있다: ‘개체 동일성’이 하나고, ‘동등’이 다른 하나다. 

 

    두 경우 모두, 개념 구조들이 완성되려면 추가 요소가 필요하다: 아이는, 대상이 지각 장에 없을 때도, 반드시 그 대상을 시각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재연(再演)’이라 적절히 불리는 것을 산출하는데, 실상, 이것은 과거 경험을 재생하거나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다한 삐아제 비판가들이 간과했던, 그리고 쥐와 고양이, 벵갈 원숭이한테서 대상 영속을 입증해 보이려 했던 모든 실험들이 간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물들이 방금 말한 대상 재연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내 믿기로, 보일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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