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칸트의 '초월(transendent) 철학'이 참작하는 '자연'이란?

두 번째(초월)는 주어진 대상들의 총합 – 그 대상들이 감지들에, 당신이 원할 경우, 또 다른 어떤 직관에 포착되든 않든 – 즉, 자연을 참작한다. (Kant, 1787; p.873; 내 강조) 

 

     두 번째 ‘초월’에 속하는 모든 건, ‘사색적’이며 '사색적(speculative)'이라 함은, 칸트한테, "이성을 그릇되게 사용해, 초월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는 가망 없는 시도에 이성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환상적 조망"을 가리킨다. 

 ‘경험 가능한 경계를 벗어난 것임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내 생각에, 그 초월 부분이 합리적으로 납득 불가능한 까닭은, 거기에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언어와 개념들>이 채택될 수밖에 없고, 고로, <그것들>을 ‘경험 경계 너머까지’ 사용하는 건 <그것들>의 적용 범위가 <그것들>이 형성된 영역 너머까지 뻗어가고 있다는 전제(當然視)를 암묵적으로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코와 견해를 같이하며, 초월적인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오직 시적 은유로만 말해질 수 있을 뿐이며, 하여, 신비적 권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에서,

 

'자연'은 대문자 자연이다. 말인즉, 

설명된 것처럼, 구성된 세계로서 자연이 아닌 

경험이 마주하는 또는 그 너머 '세상'으로서,

칸트 표현으로,  

<설정 또는 단정된>(posited) "대상들의 총합"이다.

 

또한 '사색적(speculative)'이라 함은, 칸트한테, 

"초월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는 가망 없는 시도에 

이성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환상적 조망"을 가리킨다.

 

 

RC(1995) 역자 주석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