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능한 한, 1인칭 대명사, 나/우리를 명시하고자 했던 까닭은,
모든 구성물은 주관적이라는 것, 즉, 말하고 쓰고 있는 그 자신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어에서, 더구나, 일상의 부드러운 언어 사용들에서는
주어들, 특히, 일인칭의 생략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교차 사용 또한 흔한 일이다;
'우리'를 쓰며 그 '우리'에 '나'가 빠지는 문장의 의미란,
미친 세상에서나 볼 수 있지만,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RC가 구성된 모든 것들은, 인지 주체의 주관적 구성물임을 들어,
나와 우리를 등가로,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RC에 대한 오해이며,
RC가 ‘사회’라고 하는 영역을 간과하는 또는 그 중요성이 경시된
사고 방식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할 수 있다.
그러한 등가 또는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그러한 차이 구별로부터 창발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타자와 협력 영역을
자신의 직접적 행위 구역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한 회피의 시작일 수도 있다.
구성론의 정신에 진입하고 나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영역은,
이러한 자신의 직접적 행위 구역에서,
모든 행위에 대한, 일어나는 모든 결과에 대한 것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라는 사고 전환에 대한 충격을 감당하는 일이다.
이어,
책임은 그 행위 자체에 실린다는 것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깨닫고 난 후,
타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상호 의도치 않은 불화, 기만, 헛발질을 야기할 경우는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지배적인 강압, 기만, 헛발질 문화에 대한 대안 문화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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