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phenomenon(現象)’의 그리스어 ‘φαινόμενoν(파이노메논)’은,
<보여주다, 빛나다 나타나다(자체로 현시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φαίνειν(파이나인)에서 나온 명사형으로,
관찰 가능한 일어난 일이다.
현상은 자주,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나타남(appearance: 顯顯, 顯示, 출연)이나 경험에도 쓰인다.
실재론적 관점을 고수하는 경우,
현상들에는 크왈리아(感覺質)가 때때로 수반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용어의 근대 철학적 용법은 칸트에서 시작되며,
그는 이 용어를 누머논(noumenon)과 대비시켰다
(철자로만 보면 현상은 누머논의 표현형으로 보인다).
현상과 대비시킨 누머논은,
직접적 관찰 가능하지 않는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은
발견적 허구로서 설정, 단정된 것이다.
근대 철학 용법에서,
용어, ‘현상’은 “경험된 것은 실재(現實)의 기초다”를 의미하게 되되었다.
칸트의 첫 논문, “감지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형식과 원리들에 관해(1770)”에서, 그가 이론화한 것은,
“인간 마음은 논리적 세계에 제약되며, 따라서 발생한 물리적 현시들에 따라 그 발생들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였다.
‘인간들은 그들 감지들이 허락한 만큼만을 추론할 뿐 대상 그 자체를 경험할 수는 없다’고 썼다.
해서, 용어 '현상'이 지시하는 것은,
탐구, 조사할만한 사건, 특히 통상적이지 않은 또는 구별할 중요성을 갖는 사건들이다.
콜롬비아 백과사전에 따르면,
“근대 철학자들은 판단을 적용하기 전에 포착 또는 알아본 것을 지시하는 데 ‘현상’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관찰에 이미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는 걸 감안할 경우,
용어 현상에 대한 그러한 용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적 용법에서,
현상은 관찰 가능한 어떤 사건이지만, 공통으로 경험하는 내적 현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현상은,
아이작 뉴튼의 달의 궤도와 중력에 대한 관찰, 또는
갈릴레오의 추의 운동에 대한 관찰과 같은,
물질, 에너지, 또는 시공간의 어떤 특징일 수가 있다.
또 다른 과학적 현상의 예는 환상지(幻想肢) 감각 경험에서 볼 수 있다.
절단된 사지에서 느끼는 이러한 감각 발생은
절단된 이들 가운데 70% 이상이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팔이나 다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감각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철학, 체계이론, 과학, 그리고 예술에서, 창발(나타남)은,
더 큰 것, 패턴, 그리고 규칙성들이
자체로는 그것들의 속성들을 드러내고 있지 않는
더 작고 더 단순한 것들 사이 상호작용으로 생겨나는 과정으로 구상된 것이다.
철학에서, 창발에 대한 거의 모든 설명들은
더 낮은 수준으로 환원 불가능한 (인식적 또는 존재론적) 형식을 포함한다.
또한 창발은 통합적 차원들과 복잡계의 이론들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생물학에서 연구되는 생명 현상은,
일반적으로, 화학에서 연구되는 상호작용하는 분자들의 창발적 속성으로 인지된다.
물-그-자체와 현시/출연(appearance), 그리고 누머논을 참조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