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권역은
경험에 기반한, 그리고
경험적인 것을 탈락시킨 경험과 독립된,
반성적 추상의 최고 수준에서도
설명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권역이다.
그래서,
그 권역을 주시하고 명상하는 방식은
시적 형식들이며,
그러한 태도로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일상을
신비와 기적으로 응대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아이같이 생각하고 행하기 그만하기에서, 스리 오로빈도의 명상,
샤를 보들레르의 교감, 등등과 같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