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기억 그리고 상기(想起)에 관해

'기억'이란 단어는 

'기억하다'로도, 그리고 그 역으로 '기억나다'로도 쓰인다. 

후자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억기하다'는 단어가 있지만,

통상 거의 쓰이지 않으며, '상기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전자와 후자를 영어로 구별하자면, 'memorize'와 'remember'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전자 후자 모두에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맥락에 따라 구별할 수 있지만, 종종 혼동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용어 '기억'을 사용할 때, 통상 이 용어는 '기억된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나거나 억기하거나 상기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통상 기억된 그대로 꺼내거나 떠올린다고 여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지금 과거 기억이라고 마음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과연, 그때 그렇게 기억된 것인지 돌이켜 볼 수 있다면,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해서, 모든 기억은 현재 보고 있는 바로서 재구성이라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아, 

화두, ‘지금, 여기’를, 

<과거란 현재 생각하고 행위하는 자가 가진 개념으로 재구성한 기억이며, 

미래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 상상으로 투사된 현재 바라는 기대들이다>로 이해할 경우,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 현재의 일부가 된다. 

 

물론, 과거와 미래가 사라진다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도구로서 화두가, 일상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과거가 현재를 뒤흔드는 일과 미래 가상공간이 현재를 점하는 바가 최소가 될 때다. 

 

하지만, 대체로 대다수 이들한테, 

그러한 과거와 미래 공간들이란 

현재에서 그 실재성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들이며, 

그것들을 항상 ‘지금, 여기’에 들어맞게끔 재구성하지 않고 털어내는 경우, 

매번 세상의 급격한 수축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고로, 그러한 과거와 미래의 것들이란, 

실상, 해결되어야 할 현실의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지, 

대수롭지 않게 잊혀져야 할 것들이나 포기되어야 할 것들이 아니다.

RC(1995) 역자 주석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