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적 수준에서, 자연 선택은 환경에서 기인한 요동들에 대한 반응이 적응적이지 못한 개체는 제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우연히 적응적 반응을 취한 개체는 살아남는다. 계통발생이 산출하는 결과들은, 이와 같이, 소급(遡及) 가능한 것들로 간주된, 마치 귀납의 결과들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다: 생존한 것들이란, 그저 환경의 요동을 어쩌다가 극복한 그러한 돌연변이체들에 불과하다.
개체발생 수준에서도, 그 패턴은 유사하다. ‘효과 법칙’, ‘동일 조건에서, 새로운 연결이 사태(事態)를 만족시키는 경우 그 연결은 더욱 강고해진다’(Thorndike, 1931)는 핵심에 있어서 다음 패러다임과 동등하다:
생명 시스템은, 자체로 순환적 조직이기에, 귀납적 시스템이며 항상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일어났던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유전적 그리고 그밖에 모든) 조직은 보수적이며 오직 작동하는 것만을 반복한다. (마투라나, 1970a, p.39)
마투라나가 생물학자로서 말한 표현, ‘작동한다’의 의미는, 그 시스템이 행한 것으로 생명에 위협적인 요동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귀납적 원리가 삐아제의 개념 ‘스킴’에서도 고유한 것이지만, 한편, 거기에서 그것은 인지 원리다. 스킴은, 생물학적 생존뿐만 아니라, 도달치 못 한다한들 치명적이진 않은 유기체의 인지적 목표에도 복무한다. 스킴은, 도구주의 학습 이론의 일부이며 동화(同和)와 조정(調整) 과정들을 편입, 합체시킨다.
활성화되기 위해, 스킴한테 필요한 것은 감각 신호들의 구체적 패턴에 대한 지각이다. 하지만, 실제 경험에서 전적으로 같은 두 개의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고로, 특정 스킴을 촉발시키는 감각 패턴은 지각장(知覺場)에서 반드시 그 유기체에 의해 격리되어야 한다 – 그 지각장은 통상 그러한 감각 패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엄청난 신호들을 공급하고 있다. 그 이외의 경우, 지각장에 (격리에) 필요한 모든 신호들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해, 차이들은 무시되어야만 하며, 그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그 패턴이 획득(獲得)될 수 있도록, 그러한 차이들 무시하기는 동화(同化)라 불린다.
행위 시스템이나 유기체가 특정 차이들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그 시스템이나 유기체가 특정 스킴을 촉발시킬 해당 패턴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신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질적 신호들을 느끼고(積在하고) 있는 관찰자는 그 유기체가 동화 과정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3장을 보라).
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은,
관찰자로서, 귀납에 대한 정의, 설명이 아닌,
살아남으려는 유기체 또는 배우려는 유기체의 관점에서 귀납에 대한 정의, 설명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바로 귀납의 실체다.
유기체는
자신의 행위로 야기되어, ,
관찰자가 보는 유기체의 외부(유기체는 알 수 없는 유기체 경험 너머)에서 ,
작용하는 과정(관찰자가 보기에 유기체의 행동이 야기하는 바)이 어떤한가와 무관하게,
자신의 특정 해당 스킴이 요구하는 것만을 지각한다:
지각하고자 한 것만을 지각한다.
지각하기를 원하는 것, 그 기대를 실어 행위하고,
자신이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어찌 작용하든,
이어 들이는 것이 기대에 맞는 것이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바로, 글자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들이는 것, 귀납(歸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