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용어 'accommodation'의 번역어로서 '조정'과 '조절'에 대한 택일 문제에 대해

‘assimilation’과 동화(同化)는 정말 딱 맞는 대응이다. 

하지만, ‘accommodation’의 경우는 

번역어로 조정(調整)이 나은가, 조절(調節)이 나은가? 

현행 발달심리학 서적들 대부분은 조절로 자리잡힌 것 같다. 

 

영어 accommodation의 동사형  accommodate의 뜻은,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1) ‘잠을 자거나 살거나 안을 자리나 장소를 제공하는 것’, 이어, 

(2) ‘그런 것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 조금 더 확장되어, 

(3) ‘타자들의 의견을 배려 또는 사실을 고려해서, 즉 

각자의 자리들을 제공함으로써 협상, 조정(調停)하는 것’, 또는 여기서 한편에만 자리를 배려하는 경우, 

(4) ‘타자가 원하는 걸 하도록 돕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5) ‘새로운 상황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화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편, 한국어 사전과 용례를 보자. 

 

조정(調整)은, ‘기준이나 설정에 맞게 정돈하다’이고,

어떤 경우, ‘기준이나 설정에 맞게 조절하여 정돈하다’로 풀어쓴 경우도 있다. 

조절(調節)의 경우는, 

‘대상의 상태를 조작, 제어하여 적절한 수준으로 맞춤’으로 풀어쓴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자면, 

전자는 강조점이 ‘기준, 설정’과 같은 목표에 두어져서 그에 맞아들어 가게끔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강조점이 ‘조작, 제어’에 맞추어져 원하는 수준, 혹은 평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된다. 

언뜻 보면, 이걸 쓰나 저걸 쓰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어, 한국어 용례들을 보자. 

먼저, ‘조절’의 경우; 주로 사용되는 경우들은, 

‘벨트 좀 조절해’나 ‘온도 조절이 필요해’와 같이, 

길이, 온도, 습도, 등등의 양화된 수치들을 조작, 제어하는 경우들에 쓰이거나, 

자율신경계 조절, 체내 조절과 같은 수치화하기 힘들지만 조작, 제어에 초점을 둔 경우들이 해당된다. 

‘조절적’이란 형용사, 그리고 ‘조절판’의 경우 조작, 제어가 그 중심 의미를 이룬다. 

요컨대, 어떤 정해진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이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 

‘이미 정해진’ 특정 한계치 내에서 그 체계 외부에서 조작, 제어가 가해지는 것이 조절이다.  

 

다음 ‘조정’의 경우를 보자. 

재고조정 - 기업이 각자의 경기예측에 의거하여 원자재나 제품의 재고를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는 일; 

구조조정 -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직의 내부구조를 변화시키는 일; 

경기조정 - 경기의 과열이나 경제 활동의 침체 등으로 인해 생기는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국제 수지 적자, 실업 등의 

               경제적 불균형을 바로잡아 해소하는 일; 

조정력 - 몸을 가눌 수 있는 능력; 등등으로 사용된다. 

요컨대, 특정 시스템에서 그 시스템의 목표, 또는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 시스템의 관련된 특정 부분들을 

‘그 시스템에 속한 주체가 변화, 수정’하는 일이 조정이다 

(여기서 변화, 수정은 앞서 조절의 경우와는 다르게, 

한계치나 조절 단위가 미리 정해진 상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동적) 평형을 목적으로 찾아지거나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 

 

이상 용례들에 따른 단어의 일반적 의미를 정의했지만, 

실제 분야들에서 쓰이는 경우, 

특히 번역서가 중심이 된 분야들에서, 

반드시 이상 정의에 따른 구별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자율신경 조절’이나 ‘체내 조절’,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경기 조절'과 같은 경우가 그것이고, 

지금 우리가 관심 갖고 쓰려고 하는 동화와 조정(조절)의 경우가 그에 해당된다. 

 

단어, 조절을 쓰면서, 위에서 정의한 조정의 의미로 쓰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뜻이다라고 설명한다 하더라도, 

일단 그리 쓰이게 되면 그 텍스트 맥락에서는 그 뜻을 갖고 쓰이겠지만, 

그렇다고 이후, 다른 텍스트나 담화에서, 수반될 수 있는 혼동은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차이들이 있고, 그 의미들이, 

심리학 맥락에서 혼동을 야기할 수도 있다면, 검토해야 할 것이고, 

특히, 삐아제 심리학에서 이 용어가 뜻하는 바가 특별하다면, 

이들 통상어들 가운데 어떤 것에 더 잘 들어맞는가는 검토해 볼만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미 거의 모든 심리학 또는 삐아제 관련 텍스트들에서, 

조절로 번역, 선점되어 있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그렇다고 이 텍스트에서마저 조정을 조절로 번역할 수는 없다. 

 

그 텍스트들이 내가 이상에서 정의한 조정의 의미로 그 단어들을 쓰고 있다면, 

단지 언어 사용 관행에 해당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어의 오용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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