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형식의 법칙들

각 장에 대한 메모들: 노트11

11장 주석

 

   자기 자신에 대한 함수들이 허용될 수 있는가 여부는 프리키피아 메스매티카가 출판된 이래 권위자들 사이에[cf 8] 지겹도록 오래 논의된 문제입니다. 그것들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화이트헤드-러셀 논증은 유명합니다. 그 주제는 비트겐쉬타인이 비평한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4, 명제 5.241 sq]. (아래 인용들은 페어스-멕귀네스 번역을 사용했습니다.)   

   비트겐쉬타인 가로되, 조작은 형식의 표시가 아니라 형식들 사이 관계의 표시입니다. 여기서 비트겐쉬타인은 그가 형식들이라 불렀던 상태들 사이, 내가 칭한, 구별 표시를 보았으며, 또한 구별 표시와 조작 관념과 연결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표명한 것은[5.251]

함수는 그 자신을 논증할 수 없지만, 반면 조작은 자신의 기저로 그 자신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 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단일 값 함수들에만 적용될 뿐입니다. 우리가 역함수와 음함수를 허용할 경우, 그때 이상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장에서 정의된 보다 넓은 의미에서, 임의의 변수에 대한 함수는 그 변수에 대한 일단의 가능한 조작들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조작이 기저로 그 자신의 결과를 취할 경우, 이러한 조작으로 결정된 함수는 그 자신을 논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완화된 각도에서, 나는 불 방정식들과 통상 수치 대수 방정식들 사이 유추 관계를 상세히 검토할 것입니다.   

   불이 주장했던 것은16 그가 이중 법칙이라 불렀던 것을 정의하는 데 썼던 방정식, 특히

                                      x =  x                         

은 이차 방정식입니다. 진술한 대로,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그는, 그의 주석에서, 1차 이상 모든 방정식들은 일차 방정식으로 환원될 것이라고 결정지었습니다. 달리 말해, 그것은 대수 자체에서는 아니지만, 기술 수준에서만은 이차 방정식입니다.

   대수 자체에서 고려된 그 단언된 차수의 거짓은 불의 각주에서 주장[p50], 3차 방정식은 그의 대수에서 해석될 수 없다는 바로써 밝혀집니다. 우리가 곧 보겠지만 불만이 이 지점에서 그의 표기법으로 극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표기법은 필히 비수치적인 대수에 대해 수치 형식들을 사용한 것입니다.

   불의 방정식

                                      x =  x                         

은 일차 대수에서

                                    a a   a

와 유추적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이것은, 전복 없이 표현될 수 있는, 일차 방정식입니다. 수치 대수와 유추 관계를 갖는 실제 형식은 다음과 같이 도해될 수 있습니다.

   p, q, r 이 유리수인 방정식,

                              

를 가정합시다. 우리는 이 방정식을, p/q = a 로 그리고 r/p = b 로 부름으로써, 형식,

으로 다시 표현할 수 있으며, 항들을 이항시킴으로써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

 불 대수에서, F1 양식은 거부되지만, 연속적이든, 우리가 그렇게 보길 원할 경우 전복적이든, F2 양식은 허용됩니다. 따라서, 어떤 차수의 방정식이든 불 대수에서는, 그것의 일차 형식에서 필수적이지 않을지라도, 구성될 수 있으며 또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더 고차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이란 단지 구별된 전복을 추가하는 일일 뿐입니다. 11장의 마지막 두 개의 변조 방정식들은 모두 2차 방정식입니다. 그것들은 ,특정 목적의 컴퓨터 회로를 위해, D. J. 스펜서 브라운과 공동연구로 1961년 최초로 개발된 것들입니다.

 

   이들 방정식들로 재현된 회로들은(전자들은 현재 영국 국철이 쓰고 있습니다),우리가 아는 한, 두 개의 발명품들 각각에 대한 최초 응용, 특히, 전적으로 '논리(logic)'로만 세는 (말인즉, 스위치들만 있는, 그리고 전기 콘덴서들과 같은 인위적 시간 지체가 없는)  장치에 대한 최초 구성, 그리고 또한, 실수 답에 대한 구성 과정에서 허수 불 값들의, 스위치 회로에서, 최초 사용입니다. 비록 ( 너무나도 탁월한 수학자였기에 증명에 대해 분명코 거짓 주장을 할 수 없는) 페르마가 그의 위대한 정리의 증명에 이들 방정식들을 사용했으리라고, 따라서 그 증명의 자연스럼움에서 뿐만 아니라 길이에서도 '진정 비범한' 증명이었으리라고 내 짐작하지만, 실상, 이들 방정식들은 목적을 위해 그와 같은 허수 값들에 대한 최초의 사용일 것입니다. 

   허수 값들이 실수의 또는 일정한 답에 접근한다는 이유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그것들이 수학적 추리에서 그렇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일정한 방정식들은 허수 값을 사용하지 않고는 명백히 풀릴 수 없다는 사실과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자신들을 제약했던 추리 방법들로는 결정될 수 없는 (실상 참 또는 참-아님은 완벽히 결정될 수 있는) 수학적 진술들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 추리를 단지 일차의 불 방정식들에 대한 해석에 국한한다면,  결정을 항상 무시할 정리들을 발견하리라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통산 산술에서 그와 같은 정리들을 우리가 발견할 것 같다는 사실은 이러한 명백한 예측에 대한 실제적 확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오로지 증명해야 하는 것은, (1) 그와 같은 정리들은 일차의 추리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과 (2) 그것들은 더 높은 차수의 추리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2)는 이러한 정리들 가운데 하나에 대한 그와 같은 증명을 제공함으로써 증명될 것입니다.      

   나는 적어도 그와 같은 정리 하나는 텍스트에 요약된 방법들로 간결하게 결정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것들의 결정을, 나는, 노고를 들일 준비가 된, 또는 다른 의미로 고객이 있는 통상 수학자의 깜냥으로 멋지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들로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르게 전복된 여하한 이차 방정식이든 선언될 수 있다, 달리 말해, 고르게 알려질(inform)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방정식을 그것이 쓰여진 표면의 (뒤집힌) 아래-판에서, 또는 달리 말해,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in-formation)로(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것 내부의 형성-방식(formation)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표현은, 자신 내부에 그 자신의 형식을 갖는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과거에 그것에 일어났던 일을 억기한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바로 동물들한테서 기억이 생기는 방식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지는, 이른바, 이런 방식으로 전자 컴퓨터에서 구성된,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그와 같이 알려진 기억들을 20c 대표하는 전자기 스위치들로 구성했던, 기억들은 분명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 이러한 단순화된 정보(in-formation)에서 그와 같은 기억을 인간과 고등 동물들에서 더 복잡하고 다양한 기억과 정보 형식들의 전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똑같은 정신에서 물리학 또는 생물학의 고전 형식들의 여타 현시들을 참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된 유한 계층에 의해 방출된 파열을 여기된 입자로부터 방출된 파열과 정확히 같다고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첫째 이유로, 계층에서 나온 파 형식은 사각이며, 또 다른 이유로 그것은 에너지 없이 방출됩니다. (내 추측으로, 이러한 선상에서 에너지에 대한 착상에 이를려면 우리는 그 형식을 적어도 하나 이상 위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의 표현 형식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알아볼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물리학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들의 단순화된 전조들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할지라도, 그것들의 정확성과 적용범위는 인상적입니다. 이를테면, 그림 4의 표현으로 방출된 파열을 고려하는 대신 그 표현 그 자체를 그것의 정지 상태에서 고려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정상파들(standing waves)로 조성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와 같은 표현을 그 자신이 나타나는 공간을 통해 방출하는 경우, 그것은, 주어진 점을 지나서, 그 지점에서 그것의 통과 속도에 비례하는 주파수를 갖는 단순 진동으로 관찰될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이와 같이, 이러한 단계에서조차, 물질 입자들의 파 속성들에 대한 현저한 그리고 인상적인 전조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현시들을, 조금 덜 일정한 조건 아래 조금 덜 중심적 상태에서 발생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형식적 종자들, 실존적 전조들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실존은 실재의 원천으로 여기는, 그래서 중심 개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검토되자마자(부록2 참조), 실존은* 극도로 지엽적인, 그러한 바, (형식적 의미에서) 특히 부패한 그리고 공격당하기 쉬운 것으로 보입니다. 진리 개념은, 바로 알아볼 정도로 여전히 지엽적임에도, 더더욱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약점이 그 중심을 실존에 두고 있다면, 오늘날 논리학의 약점은 그 중심을 진리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와 같이 논리학 그리고 논리 수학의 발달을 유지시켰던 것은, 내 생각에, 우리 대다수가, 분명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 실존을 진리에, 진리를 지시에, 지시를 형식에, 그리고 형식을 공(空)이나 허(虛) 또는 무(無)에 맡겨야 하는 지점들에서 부딪히는 지적 장벽입니다.

   이때, 논리는 어떤 상황에서 수학과 관계를 맺는가? 잠시, 부록 2를 앞서 고려하면, 거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계산하는 형식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썼던 논증들은 그것들을 연산 형식으로 바꿔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당화 과정은 이와 같이 자신을 먹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이것은 증명 절차의 성문화는 그에 대한 증명들을 떠받치는 증거를 부여하고 있다고 믿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이룹니다. 이 과정이 하는 일이란 오로지 증명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일 뿐입니다. 소넷이 문법이나 수사로 쓰여지지 않는 것처럼, 소나타가 하모니와 대위법으로 작곡되지 않는 것처럼, 그림이 균형과 조망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정리는 논리나 계산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논리와 계산, 문법과 수사, 하모니와 대위법, 균형과 조망은 작품이 창조된 이후 작품에서 보일 수 있지만, 이들 형식들은, 최종 분석에서, 그것들은 떨어져서는 실존할 수 없기에, 작품 자체의 창조성에 기생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논리의 수학과 관계는 응용 과학이 그것의 순수 기반과 맺는 관계로 보이며, 모든 응용 과학은 구조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결합할 수 있지만 제것으로 차지할 수는 없는 창조 과정에서 삶의 수단들을 끌어내는 것들로 보입니다.     

    

 

 

16 조지 불, 생각의 법칙들에 대한 탐구, Cambridge, 1854, p50. 

ex = out, stare = stand. 따라서 실존한다는 것은 외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방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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