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장애와 유익함이 수행에 미치는 영향
before 2012

바람직한 생산 시스템- (2024) 각자의 사회적 역할: 관리직은 영역을 불문하고 봉사직으로.

 

오늘날에는 무슨 일이든 전국적으로 글로벌하게 진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개인들의 이해와 관심사가 다양하고 그 관계지음이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아름 주변에서 도모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친목모임 이상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생활과 생존의 시공간적 경계가 전국적,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다. 

유효성과 생존 여부가 그 수준에서 확인되고 결정된다.

 

또한, 오늘날, 개인들의 사고 양식은 전체적[혹은, 홀리스틱(holistic)]이고 실험적이며, 그래서 공동체적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생성, 유지, 사멸, 재생의 전과정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또한 사물의 유효성, 효율, 그리고 신뢰성에 대해 능동적 참여와 실험을 통해 그 결과를 확인하며 공유한다.

 

이 모든 것은 개인주의의 완전한 개화와 인터넷의 결합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적합한 

사회 시스템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그 가운데

생산과 소비 형식이 어떤 것일 수 있을까?

 

발상 하나.

 

언젠가, 어디에선가, 개인 또는 가족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상품 목록을 가지고 있다.

공산품, 농산물, 그리고 문화 소비 상품들까지...

과거에는 각각의 상품들을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 마켓이나 실제 마켓에서 구매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상품들을 인터넷 마켓에서 구매한다. 하지만 하나 차이가 있다.

일상적, 주기적으로 소비되는 상품들에 대해서, 또는 일정 기간에 소비하고픈 상품에 대한

구매 계획을 짜고, 해당 상품에 대해 적합한 생산자들을 선택한다.

여기서, 구매는 상품을 단지 소비하는 의미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투자다. 

상품 생산 비용을 미리 지불하고, 소비할 생산물과 잉여생산물의 일부를 화폐나 현물로 받는다.

(소비자 겸 투자자는 자신이 지불한 비용이 사회적으로 공정 혹은 적절한 것이라 여기면 잉여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홀리스틱 생산-소비 시스템의 유지 발전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비용은 치명적으로 재해를 입은 생산자들을

돕는 보험 형식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품의 질과 수량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소비-투자자는 그 손실을 감수한다.

하지만, 이러한 손실은 과거 대규모 자본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이윤 중심적 생산-소비 시스템에서

일상적으로 입는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 손실들에 비하면 미미하고 아주 가끔씩만 생길 것이다.

 

생산자의 상품 생산 과정과 일체의 비용은 투명하게 제공된다.

농산물의 경우, 작물 생산의 전과정, 거름과 약제투여 여부와 그 양, 비용, 노동시간이

투명하게 제공되며 그에 따른 상품가격이 결정된다. 생산관리자는 자신이 생산할 생산물의

질과 생산 비용, 생산량, 그리고 가격을 예측해서 공공의 형태로 제공한다.

(이 과정은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처리될 수 있다.)

이에 준거해서, 소비-투자자는 어떤 생산자의 생산물에 소비-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일정과 필요 노동력을 공개함으로써 작업노동력을 미리 확보한다.

 

생산에 투여되는 비용은 생산수단과 생산 노동력, 그리고 관리자의 노동비용이 전부다.

하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토지가 공공적 성격을 띠지 못한 관계로 지대를 지불해야 하며,

생산설비의 규모를 소비-투자자들의 감당할 정도가 충분하지 못한 관계로 이자 또한 지불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적정 이윤을 설정하거나 잉여 부분을  토지나 생산설비를 충당하는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홀리스틱한 생산-소비 시스템을 확충 확대하는 데 쓸 수 있다.

 

소비자는 다양한 농산물 생산자들 가운데 자신의 경제적 수준, 사회, 문화적 가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생산자를 선택한다. 소비자의 생산자 선택은 일년간 해당 상품을 소비할 비용의 투자이다.

이 비용에는 상품가격과 일정한 횟수의 택배비용, 그리고 화폐 투자 비용의 합이다.

(안정적 홀리스틱 생산-소비 시스템에서는 화폐투자란 거의 없을 것이지만, 현실에서 충분한 수의 소비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대다수 생산자들의 경우는 소비-투자자들을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 생산에 필요한 최소 소비-투자자들을 확보해야 한다.

생산자의 잉여 생산물은 시장가격으로 팔리고 그 화폐는 소비-투자자들에게 분배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생산자와 생산물들의 차이와 차별들이 형성된다.

이를 통해, 신뢰도는 소비자겸 투자자들의 경험적 과정을 통해 확인되며 이후 재생산과 재투자는 보다

신뢰성 있게 진행될 것이다.

 

가격 결정은 생산자 또는 생산관리자가 생산하고자 하는 생산물의 질, 생산과정, 사회문화적 가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소비-투자자들은 그들한테 맞는 생산자들을 선택할 것이다.

전통적 통상적 유통과정은 사라진다. 택배 시스템이 유통의 모든 것이 된다.

 

홀리스틱 생산-소비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도다.

농산물의 경우, 저농약이냐, 무농약이냐 유기농이냐 자연농이냐의 차이는 시스템적으로

구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개인적 주장보다는 집단 시스템이

집단보다는 국가 검증 시스템이 국가별로는 선진국 검증시스템을 더 신뢰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검증시스템도 당사자들의 직접적 실험적 경험적 확인보다 우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산관리자가 이윤이 목적이 아닌 생산 과정참여자로서만 기능하기에

속여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생산물이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소비자 겸 투자자와 생산자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에 생산관리자는 결코 무리해서 생산물을 보기좋게 과다하게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일회의 생산과정 자체가 무효화되는 경우, 생산자가 져야할 부담 또한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소비-투자자가 져야할 손실과 생산과정 전체가 손상되는 불가피한 재해와 손실들에 대해서는

홀리스틱 생산-소비시스템 전체의 비용으로 전화되어야 하겠지만, 과정에서는 생산자와 소비-투자자가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부담을 최소화할려면 소비-투자자가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개별 소비-투자자의 소비-투자액이 우연적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 내에 있어야 할 것이다.  

 

생산관리자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질과 시간을 시기적으로 계획해서

공개함으로써 사회적 유휴 노동력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노동비용은 노동력의 질과 시간에 부합해서 지불된다.

 

생산과 소비가 직접적으로 관계됨으로써 인간들 사이 직접적 상호부조 형식이 창발하며

그렇게 될 경우 더 이상 사적 자본의 보험 사기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생산력은 절정에 다다랐다. 생산수단은 더 이상 집중될 수 없을 정도로 소수한테 집중되었다.

모든 산업에서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은 파편화되어 생산과 유통의 부속품으로 전락했으며

여타의 협동조합, 친환경생산조합, 공정거래, 시민발전 등등...  나름 대안적 생산-유통시스템들이 나왔지만

대개가 몰락해가는 다수의 소생산자의 저항에 대한 거대 자본이 허용한 완충지대에 다름아니었다.

이 완충지대는 적극적 협력의 기반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화폐 축적의 조류에 휩쓸린다.

기반이 되었던 신뢰는 점점 옅어지고 대자본의 가식적 브랜드만도 못한 처지로 몰린다.

 

조장된 위기와 불안감에 똘똘뭉쳐 저항하는 것은 

최소한의 남은 사회적 보장 수단을 지키는 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조적 협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더 나은 삶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림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욱더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생명이 아닌 사람이므로...

 

자신이 관계한 생산과 소비, 유통의 전과정을

자신의 통제하에 전면적으로 장악하라!

 

사람된 생산자와 사람된 소비자들을 기다린다. 

 

 

 

돈을 똥으로 보지 않는 한,

그 어떤 아이디어도 파편적이며,

그럴듯한 포장으로 등장해

사람의 골을 빼먹고 

가면을 벗고 다시 돈지랄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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