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장애와 유익함이 수행에 미치는 영향
before 2012

사회적 기획으로서 종교: 불가지의 공포(2012) - 공포가 평안으로 바뀌는 길밖에 없다(2024)

옛사람들이 아이들이 어둠을 무서워하고 하늘과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닥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무서움을 넘기거나 누그려뜨리는 데 가장 널리 쓴 방식은?

유추였다.
그것은 당시로는 알 수 없는 천둥, 번개, 지진에서부터, 온갖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이들 발생 원인과 과정을 그럴싸한 권능 주체와 주체의 행위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사의 형식을 빌린 것이었다. 인간 권능에 대해 과장되거나 그 약점이 제거된.

또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알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은 
저 세상에 밀어넣고 저 세상의 권능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세상의 권능에 내맡긴다. 
그 주인들의 세상은 이 노예들의 세상에 대해 저 신들 세상의 권능을 확보한다. 숙명적이다.

그들 주인들이 고래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구나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제공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내가 신에게 부여받은 권능의 소지자라는 것을 확고히 할 수 있다.
* 내가 모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불가측한 신의 문제지 나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나한테 돌아올 책임과 권능의 훼손을 신이나 저 세상으로 돌린다

(이때 희생제와 희생물이 필요하다).

전자는 생산수단의 전유와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핵심이었고
후자는 전자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회피와 위계를 유지하는 협박장치였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려면 위 두 가지 밀법을 파해해야만 했다.
우선은 된사람의 도움으로 지식을 확보하는 것, 즉, 생산과정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었으며,
이어 자유인들의 결합으로 생산과정을 장악하고 불가측한 것들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자유인들에게 불가지한 저 세상의 이 세상으로 돌출(혹은 신의 불가측한 행태)들은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는 자유인 혹은 각성한 자들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그 공포를 이겨낸 이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설사, 자기 내면의 공포는 견딘다 해도 사회적 공포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행동한 이는 정말 적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공포 분위기에 적절히 대응한 것이 사회적 기획, 제도로서 종교의 확립 현상이다.
자유인 혹은 각성한 자들은 자신들이 노예로부터 벗어나면서 얻었던 저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잊는다.
아니 숨긴다.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기 위해. 그들은 자유인 또는 각성자들을 미혹시켜 망상으로 사로잡는다.

저 세상의 불가지, 이 세상의 불가측을 견뎌내기보다는 저 세상의 이 세상으로의 돌출의 빈발하지 않음을 이용해
이 세상의 가지, 가측을 저 세상에 대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이 노예 세상은 그 주인 세상들의 그런 의도를 모른 채, 불가지의 저 세상에 대한 주인의 주문(呪文)에 따라,
자기들 노동의 이해와 통제를 포기한 채, 자신들을 탓하고 멸시하고 그 세상을 부러워하며 저 세상에 굴복한다.

이 세상에 위계들을 만들고 그 위계들을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 저 세상에 위대한 건축물을 짓거나
저 세상과 이 세상의 끝없는 순환, 말인즉, 저 세상에 대한 이 세상의 재현, 또는 불가지한 윤회라는 형식을 창조했다. 

저 세상 건축물의 층위 어딘가에 입주에 대한 열망은 집단적 광기로 북돋아지고, 저 세상 속 그 세상으로
윤회에 대한 희망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인정과 인내로 이어진다. 노예는 천상 노예일 뿐이다.


자유인에게 혹은 각성한 자한테,
이 세상은 언제나 지극히 합리적이고 설명가능한 이해될 수 있는 세계다.
저 세상이란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들이 속할 그 세상이 있는 곳일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세계를 개발하고 궁구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쏟아붇는다.
그 결과, 이 세상을 통제, 제어하는 데 더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가치, 삶의 형식이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들은 저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 세상에 그 세상이 있다고 믿기에...
그 세상들이 귀신들만큼 많을 것이기에...
그 세상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기에...

 

2012년 어느 날

 

이생적(현세적), 비종교적, 불가지론적, 무신론적인 사람들이

63억 가운데 11억이나 된다는 것.... 것도 그 대부분이 소위

선진 개발국에 속한다는 것...

 

호~~~, 근데 왜 이 세상은 종교가 득세하며 개판치고 있을까????  

 

2010년 의문에 대한 답이다.

어정쩡한 자유주의에 자유인들, 각성을 빙자한 지식, 명상 장사꾼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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