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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Radical Constructivism’의 번역어 선택에 관해

이 용어 ‘Radical Constructivism’은 ‘급진적 구성주의’로 알려져 있다. 용어 ‘constructivism’이 ‘구성론’으로 번역된 경우는 주로 수학과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문학, 언어학, 그리고 교육학 분야에서 ‘constructivism’을 소개, 번역한 책들은 ‘구성주의’로 옮기고 쓰고 있다. 용어가 어느 한 쪽으로 통일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구성론이 일정한 방향을 갖는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되는 있는 것이 사실인 한, ‘주의’라 붙인들 적합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관념론, 회의론, 상대론, 합리론, 그리고 경험론과 같은 경우에도, 실상,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텍스트에서 ‘constructivism’ 은 ‘realism’과 대별되고 있다.  물론, ‘realism’ 또한 분야에 따라 ‘실재론’으로, ‘현실주의’, ‘사실주의’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실재론’은 이미 하나의 ‘주의’, 즉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확립된 이론이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해서, 실재론에 대비되는 관점으로서 ‘구성론’이라 하지 못할 까닭도 없거니와, 더더구나, 특정 인물의 (상호)주관적 구성물로서 특정 이론을 지시할 때는, ‘구성주의’보다는 ‘구성론’이 더 적절하게 보인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용어 ‘radical’은 ‘급진적’보다는 ‘근본적’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운동적 관점에서, 급진적이란 용어는 오늘날 ‘합리성이 결여되고 과격하고 성급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RC는 구성론이 그 바탕, 전제, 즉 뿌리에서부터 굳건하게 구성 확립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이 더 적절하다. 

 

     고로, 이 용어가 사조로서, 운동으로서 사용될 때는, ‘급진적 구성주의’로, 하지만, 실재론이나 상대론, 유아론과 대비되어 사용되는 경우에는, ‘급진적 구성론’ 또는 ‘근본적 구성론’이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용어에 대해 이리 설명을 하고 RC로 줄여서 쓰는 것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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